1995년 6월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초호화 백화점이 순식간에 폭삭 내려앉으며 502명이 사망하였다.
당시 삼풍백화점 5층의 일식집 막내로 일했던 이병호씨, 그날은 이미 ‘장사를 공친 날’이었다고 한다. 오전부터 주변 식당들의 천장이 내려앉으면서 천장에서 물이 샜고 손님이 시킨 음식 위로 물이 똑똑 떨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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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가 일하던 일식집 사장은 건물에 이상이 없는지 두 번이나 백화점 측에 물었지만 “문제없으니 장사를 계속하시라”답변만 돌아왔다. 가게가 있던 5층 홀에서는 ‘흑진주 박람회’를 했는데 백화점 측에서 갑자기 전시한 미술품과 보석을 수거해갔다고 한다.
“나가! 이 새끼야!” 이씨는 험한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홀에서 건물의 상황을 보던 주방장이 식당으로 달려오며 외쳤다. 나이가 지긋한 주방장은 막내인 이씨를 귀여워할 뿐, 이씨에게 싫은 소리 한 번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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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셔 누나가 “돈 통을 놔두고 왔다”며 걱정했고 이에 사장과 주방장 등 가게의 어른들은 “괜찮다, 내가 챙기마”라며 막내들을 서둘러 내보냈다. 이씨는 “주방장님은 그렇게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안다”고 회상하였다.
건물이 휘청이자 사람들은 주저앉았고 어둠 속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같이 일하던 또래 여자애 둘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손을 잡고 대피한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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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지하 1층에 모여있었고 청원경찰의 도움으로 탈출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씨의 트라우마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이씨는 자신이 구멍을 통해 나오는 순간 뒤편으로부터 “살려주세요”라는 희미한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 목소리는 처음에는 작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커진다고 한다. 이씨는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가 자살시도를 한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 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가 더 커졌다”며 “한동안 그것 때문에 무섭고 괴로웠다”고 밝혔다. 이 사고로 이씨의 동료 20여명 중 4명이 사망했다.